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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절제되고 건조하게 실질적인 공포를 주는 영화 '암수살인'

  '암수살인', 낯선 제목과 의미

이 영화의 제목인 '암수살인'은 피해자는 있지만 신고도, 시체도, 수사도 없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살인사건을 의미합니다. 다소 생소하며 낯선 단어를 제목으로 삼아 호기심을 유발하기도 했고, 요즘 상한가인 '주지훈'이 연쇄살인마를 연기한다고 하여 그 모습이 궁금하기도 하여 관람을 결정했습니다. 


암수살인


제목 : 암수살인 (2018) ,Dark Figure of Crime, 暗數殺人

장르 : 범죄, 드라마

개봉 : 한국 2018.10.03 개봉 

상영시간 및 등급 : 110분, 15세이상관람가   

감독 : 김태균

주연 : 김윤석, 주지훈



영화는 살인범 '강태오'가 형사 '김형민'을 처음 만난 자리에서 살인 혐의로 다른 형사들에게 잡히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감옥에 있던 강태오는 재판 도중에 담당 형사도 아닌 다른 부서 형사 김형민에게 7건의 살인을 자백합니다. 이를 근거로 김형민 형사는 이미 지난 공소시효와 턱없이 부족한 증언, 증거 그리고 수사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교묘하게 뒤섞인 거짓 증언 속에서 탐문과 수사를 계속 해가죠.


  살인범 강태오와 형사 김형민의 심리대립



이 영화 속에서 전체적인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은 강태오와 김형민의 극적인 대립에 있습니다. 불법인 것을 알면서도 강태오에게 영치금과 선글라스를 증언의 대가로 줄 정도로 유연한 형사인 김형민은 강태오에게서 강태오를 이기려들지 않고 달래서라도 일말의 단서를 얻어내기 위해 노력합니다. 법이라는 시스템을 너무도 잘 파악하고 이용하고 있는 살인범 강태오는 심리적인 싸움에서 김형민보다 우위에 있음을 과시하면서 이용하려고 듭니다. 이렇게 서로에게서 얻어내고자 하는 것들이 있기에 관객들로 하여금 그들이 만나는 장면은 대사 하나도 놓치면 안될 것 같은 긴장감을 줍니다.


  정의의 사도가 아닌 직업 공무원으로서의 형사 '김형민'

한국 수사물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정의감 넘치는 형사가 아닌 그저 묵묵히 단서를 따라 수사를 계속해나가는 직업 공무원으로서 형사를 연기한 배우 '김윤식'의 절제된 연기가 색다르면서도 신선하게 다가옵니다. 영화 속의 검사 또한 결정적인 증거와 사실을 제시하고 '강태오'의 범죄를 소명할 수 있기 전까지는 법적인 행위를 하지 않습니다. 또한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도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처럼 건조하고 담백한 느낌입니다. 현실에서의 검사와 형사들은 저렇겠구나하는 꽤나 사실적인 묘사를 볼 수 있죠. 그렇다고 나태하게 사건을 해결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법적 테두리 안에서 효과적으로 범인을 제대로 법적인 대가를 치르게 하려는 충실하고 끈기있게 결정적인 증거를 모으는 형사들과 검사인 것이지요.



영화 속의 살인범인 '강태오'를 연기한 주지훈의 연기도 역시 오버하지 않습니다. 극중에서 흥분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조차 계산된 행동이지요. 살인을 한 후 감정의 동요를 보여주지 않는 모습, 그리고 그 희생자들을 처리하는 모습도 냉혹한 살인자의 일면을 잘 표현합니다. 일부 영화를 보신 경상도분들은 주지훈의 어색한 부산 사투리가 거슬린다고는 했지만 저는 억양으로 인해 대사 일부를 놓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다소 아쉬운 부분이었지만 영화의 몰입감에 방해를 주는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절제되고 담백하게 표현하지만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사건, 그리고 공포

이 영화를 보면서 저는 실질적인 공포를 느끼기도 했습니다. 영화 속에서 강태오의 살인은 정말 그럴듯하게 일어나거든요. 영화속에서 그 장면을 매우 직접적이거나 사실적으로 잔인하게 묘사하지는 않습니다. 강태오의 행동으로 살인이 일어나는 상황을 유추해 볼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일상적으로 만날 수 있는 택시기사였던 '강태오'도 길 가던 사람과 시비를 붙던 '강태오'도 운이 나쁘면 만날 수 있는 비극인 것처럼 묘사됩니다. 일상적으로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여지를 주는 정황적 공감을 하는 순간 공포는 실체를 갖게 됩니다. 희생자들은 평범하기 그지없는 소시민이죠. 살인을 당해도 시체를 찾아내지 못하면 일정 시간이 지나 잊혀질 그런 사람들이요.



극적인 효과를 보여주거나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거나 시원한 액션이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살인범과 형사의 심리적 대립을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수사 과정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영화 '암수살인'은 최근 한국 영화들의 감정과잉 상태와는 반대인 것만으로도 점수를 높게 주고 싶습니다. 또한 배우들의 절제된 연기도 뛰어난 꽤 수작이었습니다. 상영시간 내내 시계 한번 확인하지 않고 몰입해서 봤습니다. 저는 재미있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