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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현실의 깊은 이해로 탁월하게 각색한 윤종빈 감독의 첩보 심리극 '공작'

  윤종빈이라는 감독때문에 선택한 영화 '공작'

처음 영화 예고편을 봤을 때, 그저 그런 뻔한 스파이물이겠거니 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다 '흑금성'이라는 인물에 대해 우연히 알게 되고, '윤종빈'감독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봐야겠다 마음 먹었었죠. 사실 개봉 첫주말에 관람했어야 했는데 사정이 생겨 한 주 늦은 관람을 하게 됐습니다. 따라서 지난 한 주사이에 후기와 관련기사를 회피하느라 애를 먹었어요. 스쳐지나간 제목으로만으로도 영화는 여러가지 면에서 칭찬일색이었고요. 게다가 '뉴스공장'에서 김어준 공장장의 감독 인터뷰까지 나올 줄은 예상밖이었습니다.


윤종빈 감독의 대표작인 '군도:민란의 시대'와 '범죄와의 전쟁:나쁜놈들 전성시대'를 흥미롭게 감상했던 터라 기대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 분은 영화 배경이 되는 그 시대를 관통하는 주제를 가져다가 다큐멘터리같은 기법으로 적나라하게 묘사하는 방법을 통해 영화의 주제를 드러내는 데에 탁월한 재능을 가진 것 같습니다. 


특히, '범죄와의 전쟁'에서 영화 속 장면이 사실인지, 극인지 여부가 불분명할 정도로 비열하지만 지극히 현실에서 있을 법한 캐릭터들을 내세워 조폭세계와 그 시대의 부패를 적나라하게 보여줬습니다. 대중적으로도 꽤나 입소문이 났었는지 최민식이 연기한 비리 세관원 '최익현'이라는 캐릭터는 다양하게 패러디되었고, 각종 게시판에 다양한 밈을 양산하였을 정도로 인기가 많았죠. 따라서 과연 '공작'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갈까 매우 궁금했습니다.



개봉일 : 2018.08.08.

장르 : 드라마

상영시간 및 등급 : 137분, 12세이상관람가

감독 : 윤종빈

주연 : 황정민, 이성민, 조진웅, 주지훈



  숨막힐 듯한 긴장감을 유지하는 대사로 진행되는 심리극, 스릴러와 드라마 그 사이

전작과 달리 영화 '공작'은 전체적으로 조용하고 차분하지만 심각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해서 그런지 치밀하게 계산되어 딱 들어맞는 작전의 모습을 보여주기보다는 실제 작전이라면 이렇게 신분위장을 통해 북측과 접촉했을 것이라 예상되는 90년대 아날로그식의 첩보활동을 표현하고, 관객으로 하여금 그 상황에 빠져들게 만듭니다. 안기부의 지령을 받은 박석영(황정민)이 신분세탁을 통해 사업가로 변모하는 과정을 개연성있게 그려내는 방식이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수 년에 걸쳐 여러 작전을 통해 드디어 박석영이 리명운(이성민)을 만나는 장면은 그 자체로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로 긴장감이 넘칩니다. 서로 입장을 내보이지 않으면서도 파악하려고 던지는 말 한마디 한마디는 그 자체로도 명장면을 보여줍니다. 이성민의 연기는 정말 명불허전이더군요. 극에서의 노련해보이면서도 날이 서있는 연기는 보는내내 몰입하게 만듭니다. 


박석영과 정무택(주지훈)을 만나는 장면 또한 리명운을 만나는 것과는 다른 긴장감을 줍니다. 역시 보위부 간부답게 호탕해 보이지만 끝까지 의심하는 모습을 드러내며, 박석영이 철두철미하게 준비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 주죠. 게다가 리명운과 달리 보위부의 목적을 확실히 보여주며 조직간의 내부갈등을 보여주는 역할을 탁월하게 합니다. 영화의 완성도를 높여주는 장치였어요.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박석영이 직접 북한에 가서 북한 평양의 모습을 박석영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장면과 김정은을 만나는 장면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평양에 가게 되지만 그의 눈으로 바라보는 평양은 아주 차갑고, 질서정연하며, 권위적입니다. 공산주의 국가답게 선전용으로 활용하는 도시 모습과 기아로 고통받는 일반 북한민들의 참혹한 일상을 대비하여 보여주면서 그 끔찍한 현실을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그걸 보는 관객들은 그 당시 온갖 공작과 첩보활동이 난무할 수 밖에 없었던 동기에 공감하게 됩니다.


  현실이 더 영화같은 상상 그 이상의 정치 서사

총격전이나 액션 장면 하나 없이 대사로만 이렇게 긴장감이 있을 수 있다는 것도 신기합니다. 영화의 이야기를 진행하는 방식은 여러 수를 건너 보는 계산된 대사와 배우들의 부딪치거나 흔들리는 시선이 만들어내는 심리극입니다. 다들 이부분을 매우 칭찬하더군요.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와 함께 배우들이 서 있는 압도적인 공간을 보여주는 방식에 따라 긴장감을 유지하는 것이 놀랍더군요. 



영화의 배경 또한 암담하기 그지 없지만 그 상황을 깊게 이해하고 그럴듯하고 밀도있게 사실적으로 각색한 연출방식이 저는 마음에 들었습니다. 국익이 아닌 사적이익을 추구하는 집권여당과 조직의 사활때문에 자국민의 희생도 마다하지 않은 안기부 수뇌부들의 행태는 저열하다못해 추접합니다.  하지만여러 사건들을 통해 증명된 사실로 정치 서사만큼 극적인 이야기는 없는 것 같습니다. 언제나 상상 그 이상인 것을 보면 말이지요. 


이상 액션과 총격전이 아닌 심리전을 극대화한 한국형 첩보물의 새로운 형태를 보여주는 영화로서 꽤나 가치있는 '공작'의 후기였습니다. 진중하고 심각한 분위기에 잘 구성된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이 영화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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