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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결국은 인간이었던 히어로들의 내전 '캡틴아메리카 시빌워'

이틀 전에 극장에서 '어벤져스:인피니티워'를 다시 보았습니다. 원래 개봉하자마자 달려가서 봤었지만 그때 운이 나빴었는지 뒷자리에 단체로 온 초등학생들이 너무 소란스러워서 영화에 오롯이 집중할 수가 없었죠. 그때 너무 속상했었어요. 영화는 명성에 걸맞게 너무 흥미진진하여 한 장면도 놓치기 싫어서 숨쉬는 것도 잊고 있을 정도였는데 결정적인 장면이 나올 때마다 소리지르고 발을 구르는 아이들 덕분에 방해받은 것이 한 두번이 아니었거든요. 마침 인도네시아자막버전으로 영화를 본 남편도 다시 보고 싶어라 했었고, 찾아보니 하루에 한 두번 정도는 극장 스케줄에 아직도 있더라고요. 다시봐도 '어벤저스:인피니티워'는 재미있었으며, 집중해서 즐긴 이번에는 첫 관람에 볼 수 없었던 디테일을 찾아낼 수 있어서 좋았어요. 그러면서 이전 시리즈를 다시 찾아보려는 욕구가 생긴차에 집으로 귀가 후 밤에 케이블영화채널에서 '캡틴아메리카:시빌워'를 방영중이었지요.



가끔씩 영화채널에서 해주는 영화를 집중해서 보는 재미가 생각보다 쏠쏠합니다. 요즘에는 IPTV로 골라 볼 수도 있습니다만 일시정지나 되돌리기가 되지 않는영화를 보는 것이 어떤 면에서는 좀 더 영화를 집중해서 즐길 수 있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무료라는 장점도 있고요. 중간중간 광고가 지루할 때도 있지만 광고중에 간식을 가져온다거나 하는 등 후다닥 무언가를 해치우는 것도 스릴있지요. 



'캡틴아메리카:시빌워'는 벌써 개봉한지 2년이나 되었더라고요. 캡틴아메리카 시리즈 중에 하나이지만 어벤져스 시리즈에 중간이야기 역할을 하는 중요한 에피소드를 담고 있습니다. 저는 캡틴보다는 아이언맨을 더 선호합니다만 캡틴의 캐릭터 또한 참 매력적인 것 같습니다. 같은 히어로지만 캡틴의 정체성과 아이언맨의 정체성은 거의 반대라고 할 정도로 매우 다르지요. 예를들면 캡틴은 정말 도덕교과서같은 모범생 캐릭터라면 아이언맨은 싸움 잘하는 일진이 공부도 잘하고 돈도 많은 캐릭터랄까요. 이 극명한 대비로 팬들도 나뉘는 모양입니다. 캡틴을 더 좋아하는 팬들이 훨씬 많은 것 같더라고요.

 


시빌워는 내전을 의미합니다. 어벤져스의 힘이 막강해지고, 그에 따른 임무를 수행하면서 발생한 의도치 않은 희생은 다른 세력이나 조직으로부터 견제를 가져옵니다.바로 UN의 산하기관으로서 어벤져스를 종속시켜 모니터링한다는 '소코비아 협정'이지요. 이 협정에 찬성하는 아이언맨 팀과 반대하는 캡틴 아메리카 팀이 나뉘어서 정말 여러 볼거리를 제공하며 아주 피터지게 그리고 시원하게 싸웁니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캐릭터도 등장하는데, 바로 전 마블영화 히어로였던 '앤트맨'과 앞으로 단독영화로 등장할 것이 예정되었었던 '스파이더맨', '블랙팬서'는 각자의 능력을 제대로 보여주면서 존재감을 과시합니다. 


이 영화의 장점은 바로 아이언맨의 고민과 협정을 찬성하게 되는 동기를 잘 설명해주고 그에 못지않게 협정에 반대하는 캡틴의 고뇌를 잘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서로의 입장을 관객으로 하여금 공감하게 하는 연출이 매우 뛰어납니다. 원래 대의를 위해서라면 작은 희생은 감수할 수도 있다는 당연히 따르는 결과를 히어로물에서는 보여줄 수 없었죠. 히어로들이 그런 것까지 고민하기에는 빌런에 맞서는 것도 벅찰정도로 상황을 극단적으로 몰아가기 마련이니까요. 


하지만 이 작품은 '어벤저스:에이지오브울트론'에서 소코비아를 배경으로 빌런에 맞서다가 희생된 민간인들을 내세워 히어로들에게 특히 아이언맨과 스칼렛워치의 죄책감을 부각시키며 고뇌하게 합니다. 그 죄책감으로 '소코비아협정'에 찬성하는 아이언맨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대하는 스칼렛워치의 행동이 모두 이해되는 이유는 이 문제 자체가 답이 없는 철학적이며 현실적인 고민이기 때문이겠지요. 판타지를 보여주었던 히어로들이 극히 인간적인 고민을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영화의 핵심인 것 같습니다. 히어로도 결국 인간일 뿐이고, 그 삶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 그들의 결정이 답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자꾸 보여주니까요. 


그 와중에 이야기를 복잡하게 만들어 주는 등장인물은 '버키'로 캡틴의 절친이지요. 이미 윈터솔져에서 빌런으로 제 역할을 톡톡히 했던 버키는 이 작품에서는 갈등의 트리거 역할을 합니다. 용의자로 지목된 버키를 지키려는 캡틴의 행동은 다른사람들을 실망시킵니다. 극중에서 페기를 잃고 마음을 다잡는 캡틴을 보여줌으로서 캡틴의 버키를 위한 무리한 행보에 대해 근거를 제시하지만 논리적이지는 않고 오히려 인간적인 면을 부각시키는 것 같았습니다. 토니가 영화 후반에 버키의 진실을 알고 폭주하는 장면 또한 같은 맥락입니다.


이 영화의 빌런 또한 무시무시한 능력을 가지고 자신의 목적을 위해 결과 따윈 신경쓰지 않고 수많은 사람들을 희생시키는 절대악이라기 보다는 단지 복수심으로 어벤져스를 분열시키려는 또 하나의 희생자입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무고한 사람들을 희생시키기 때문에 빌런이 되었던 것이지요. 이 작품에서는 수많은 생명을 구하려는 어벤져스의 숭고한 행위는 예측할 수 없는 결과와 희생을 발생시키며 그에 대해 고뇌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히어로와 관객을 동일선상에 놓습니다. 


'시빌워'를 다시 보니 '인피니티워'에서 토니가 손목을 부여잡는 의미도 깨닫게 되고, 캡틴의 극적인 등장이 주는 임펙트도 더 강하게 다가왔습니다. 인간적인 고뇌를 하는 히어로들은 앞으로 어떤 행동을 할까요? '인피니티워'에서 아직 조우하지 못한 토니와 캡틴은 과연 어떤 만남을 가지게 되려나요? 이래저래 생각이 많아지고 다음 시리즈의 영화가 기다려지는 밤이었습니다.